

방송사 보도국 작가로 근무하던 당시, 한 기자 선배가 방송 아이템으로 특수고용직 문제를 제안했다. 특수고용직이란 회사에 노무를 제공하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직군을 말하는데, 화물차 운전기사, 캐디, 학습지 강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른바 ‘특고’라고 불린다.
선배는 ‘특고’들의 근무 환경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정말 많더라고 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고 또 퇴사시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특고’ 문제의 정확한 포인트를 짚은 선배의 말을 듣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희도 ‘특고’인거 아세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그 선배는 멋쩍게 몇 마디하고는 서둘러 반대편 자리로 걸어갔다.
방송 작가로서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나는 방송사가 대외적으로 내거는 슬로건들을 떠올렸다. ‘성역 없는 방송’, ‘공정한 보도’ 같은 것들. 방송국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의문은 자라났다. 정말, 방송에 성역이 없을까?
방송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유일한 곳, 방송사
세상에 방송이 비추지 못하는 것은 없다. 어제까지 참혹한 내전 지역을 비추다가도, 오늘 화려한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방송이 비추지 않는 유일한 곳이 있다. 바로 방송사 내부의 노동 현장이다.
나는 한국의 고용불안 문제를 알리는 데 언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나 경비원들의 부당한 처우가 우리에게 알려지고 사회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법제화까지 이뤄낸 것은 분명 언론의 힘이 컸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이만큼 온 것도 언론이 자신의 역할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방송사의 책무는 노동과 인권의 사각지대를 찾아 세상에 알리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데 있다.
하지만 그 책무는 방송사 안에서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여기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지난 2018년 1월 한겨레21은 방송사가 방송 스태프들에게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해왔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즉각 고발과 증언, 비판이 이어졌다. 방송계의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는 오픈 채팅방 ‘방송계갑질119’에는 800여 명의 신규 가입자가 들어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상품권 급여 방송사의 갑질과 관련해 정부 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상품권 페이’는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됐지만 정작 당사자인 방송사들은 물론 다른 방송사들도 이 사안을 뉴스로 다루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한 프리랜서 PD가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고 이재학 PD는 2004년 조연출로 입사해 14년을 한 방송국에서 일했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매주 목요일 1시간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PD로 프로그램 최종 검수, 송출, 섭외, 구성, 촬영, 편집 등을 책임졌고 행정 업무까지 처리했다. 그 모든 것을 담당하는 그가 한 달에 받은 급여는 120~160만 원. 견디다 못해 회사에 비정규직 제작진의 임금 인상을 요청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 통보였다.
당시 이 PD는 포기하지 않고 소송으로 맞섰다. 힘겨운 싸움이 이어졌다. 1심에서 패소하자, 그는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2020년 2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불과 1년이 지난 올해 5월, 법원은 고 이재학 PD의 노동자성1)을 인정하고 해고된 기간의 임금 6,300만 원과 소송비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프리랜서로 사는 많은 방송 노동자들에게 우리 역시 노동자임을 시사하는 큰 의미를 갖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서울경기 지역 메이저 방송사에서 이 문제가 언급된 건수는 ‘0건’이었다. 지역 방송사 중에서는 MBC충북과 KBS청주가 유일하게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1) 노동자성이란, 특수고용직의 헌법 33조에 규정되어있는 노동3권 적용대상 여부를 의미한다. 노동계 등에서는 ‘노동자성’이 있다고 보고 있으나, 경영계 등에서는 ‘노동자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성역을 부수는 사람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


과거에는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조차 업계의 금기였다. 알음알음 소개로 일하는 방송가 프리랜서이기에 부당한 처우가 있더라도 대충 덮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졌다. 현장에서 일하는 나부터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업계의 흐름을 느끼고 있다.
한번 문제의식을 가진 방송인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최근 한 방송사 보도국에서 일하던 작가는 회사가 퇴직금을 주지 않자 고용노동청에 퇴직금 지급 진정을 제기해 퇴직금과 주휴수당, 연차수당을 모두 받았다.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예열’도 서서히 진행 중이다. 올해는 KBS, MBC, SBS 방송 3사 시사·교양 및 보도 분야 방송작가들을 대상으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진행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근로감독은 전무했으니 이 역시 눈여겨 볼만한 지점이다.
특이한 것은 이 같은 업계의 변화가 대부분 방송업에 종사하는 ‘개인’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거다. 최근 전주에서는 일방적인 방송작가 해고에 반발하는 릴레이 1인 시위가 진행됐다. 비슷한 사례로 서울MBC 보도국에서 일하던 두 방송작가는 현재 사측과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침묵하지 않고 성역에 맞선 몇몇의 용기로 시작된 시대적 변화가 앞으로는 더욱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목소리를 내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아니던가. 정의를 추구한다는 방송사에서 온갖 부정의를 겪은 이들은 이제 내부 문제를 콘텐츠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방송작가 김한별은 ‘일하는 여자들’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냈다. 방송계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고발하는 활동을 기록한 영화다.


감독도, 출연진도 모두 방송작가로 구성된 이 영화는 지난 2020년 14회 여성인권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영화에 이어 방송 현장의 문제를 담아낸 책들 역시 속속 세상에 나오고 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등이 그렇다.
어떤 구성원은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어떤 구성원은 그 카메라 앞에 선다. 누군가는 바깥에 나가 마이크를 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일과를 마치고 글을 쓴다. 방송의 유일한 성역을 없애기 위해서. 카메라 뒤에도 사람이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그래서, 언제까지 이야기할 거냐고? 영화 <듄>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고 싶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
참고문헌 1) 윤영삼. (2015).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 판단기준 설정 및 화물자동차운송업에의 적용. 인적자원관리연구, 22(3), 359-379.
이은혜
방송작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TV 뉴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일했다. 방송하며 자라난 질문들을 품고 살다가 2021년 7월에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라는 책을 냈다. 세상에 라디오와 밤이 존재하는 한 낭만은 영원하다고 믿는다. https://brunch.co.kr/@graceful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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