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궁금증 혹시 가져본 적 있으신지. ‘방송 제작비는 정해져 있을 텐데 연예인들 출연료는 상당히 고비용 아닌가? 방송사는 어디서 이윤을 내는 걸까?’ 이 글이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20대 내내 사무직으로 일하다 지역 방송사의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로 전직한 것이 2014년의 일이다. 아직도 방송작가 첫 급여일을 기억한다. 그날 나는 통장에 찍힌 액수를 몇 번이나 확인한 뒤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 일만 해서는 스스로를 온전히 부양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방송작가라는 일에 온전히 몰입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임플란트 치아를 해드리고 고양이 사료도 사려면 세컨드 잡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레귤러 프로그램 외에도 여러 일을 병행하게 되었다. 메인 잡은 시사 라디오 방송작가였지만 짬짬이 공기업 사보 작성 아르바이트를 했다. 또 가끔은 방송사 공익 캠페인 원고를 쓰기도 했다. 나를 불러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날카로운 첫 행사의 기억
2015년의 어느 금요일이었다. 방송사 정규직 A 선배가 내게 행사 작가로 참여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일단 이 일로 ‘물꼬’를 트면, 앞으로도 방송 행사를 맡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행사 전체 원고를 쓸 메인 작가 선배는 이미 섭외가 되어 있었고, 나는 서브 작가 포지션으로 참여하게 되는 거였다.
서브 작가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대략 이랬다. 코너 구성, 퀴즈 출제, 코너 음악 선곡, 섭외된 연예인들 일정 체크 및 확인, 당일 행사 진행 도우미, 행사 이후 뒤처리. 작가의 업무와 조연출, 아르바이트 업무가 잡다하게 섞여 있는 모양새였다. A 선배에게 업무 영역에 대한 얘길 들은 뒤, 나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물었다.
“선배, 그럼 제 페이는 얼마예요?” “어... 이번에 예산이 넉넉하지 못해서 5만 원이야.”
순간 머릿속에 백팔 번뇌가 펼쳐졌다. 연예인들은 행사 열심히 하면 차를 사고 집을 산다던데, 작가들은 행사를 하면 오만 원을 받는 건가? 아니면 내가 몸담은 이곳만 처우가 이런 걸까? 지역 방송사라고 하지만, 그래도 공중파 방송국인데? 처우가 형편없어도 앞으로 방송 행사 일을 하려면 이 일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가만, 그러면 앞으로도 5만 원을 받고 이 일들을 다 해야 한다고? 그게 과연 가계에 도움이 될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착잡해졌다. 나는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 저는 이 돈 받고 할 수가... 하기가 어렵겠는데요...” “너는 지금 일을 배워야 하는 애가 그런 얘기부터 하면 어떡하냐.” “일을 배우면서 한다고 제 몫을 해내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이거 열정 페이 아닌가요?”
행사 수입, 교통비 떼면 마이너스
방송사에서 행사가 잡히면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건 PD와 작가일 것이다. 흔히들 방송작가라고 하면 원고 작성, 그러니까 집필의 영역만 맡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원고 작성 외의 업무가 더 많다. (특수 영역인 드라마 작가는 제외한다.) 섭외, 코너 구성, 자료 조사, BGM 선정, 사전 답사, 행사 진행, 프롬프터 관리, 출연자 체크, 주차 안내, 하다못해 행사 이후 쓰레기 정리까지 전방위로 뛰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이 행사에 들여야 하는 시간 대비 급여를 계산해 보니 시간당 2천 원이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내 말을 들은 A 선배는 말이 없었다.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내 노동력이 이렇게까지 저평가되어야 하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무엇보다 신입 방송작가들의 노동력이 수십 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취급되어 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퇴근길에 생각했다. 아마 이 방송사에서 앞으로 내가 행사를 맡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열정 페이 운운하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작가는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그래도 5만 원 받고는 도저히 일 못하겠다고.
며칠이 지나 A 선배가 나를 찾았다. 그런데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작가, 나 칭찬해 주라.” “왜요?” “여기저기 얘기해서 페이 10만 원으로 올렸다.”
A 선배는 내 입에서 나온 ‘열정 페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여기저기 얘기했다’는 짧은 문장 안에 포함되었을 긴 과정이 연상됐다. 그는 직속 상사에게 면담을 요청했을 것이다. 서브 작가 행사 페이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상사의 동의를 구하고, 어쩌면 서류도 다시 작성했을지도 모른다. A 선배는 이 귀찮은 과정을 거쳐 작가 페이를 상향해냈다.
시급으로 따지면 2천 원이 4천 원이 된 셈이다. 어차피 둘 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아가 행동해 주는 선배가 어디 흔하던가. 그 고마움을 마음에 품고 행사를 치렀다.
사실 이 일화는 미담이자 괴담이다. 문제의식을 공유한 선배가 있어 미담이고, 수십 년간 신입 방송작가 페이에 변동이 없었다는 점에서 괴담이다.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행사에서 작가, 특히 신입 작가의 급여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심지어 교통수단 지원이 안 되면 행사를 하는데 수입이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스타 방송작가들의 억대 고료 뒤에는
이렇듯 방송가의 처참한 노동 환경을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묻는다. “일부 저성과자의 경우를 확대 해석하는 것 아닌가?”, “그건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지 않나?”라고. 먼저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일하는 누구도 이런 처우를 겪을 이유가 없다. 고성과자가 많은 보상을 받고 저성과자는 적은 돈을 가져가는 게 시장의 원리 아니냐고? 그 어떤 저성과자도 시간당 2천 원을 받고 일해선 안 된다. 구성원을 그렇게 대하는 산업은 건강하지 않다.
이런 ‘방송가 괴담’은 안타깝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일부 ‘스타’ 드라마 작가들은 억대 고료를 받는다지만, 아직도 최저시급에 한참 미달하는 급여를 받는 방송작가들이 존재한다. “2020년 초에 한 달에 5개 프로그램을 하면서 100만 원 조금 모자라게 받았어요.”, “2019년에 행사 페이로 10만 원을 받았어요.”, 올해 내가 진행한 방송작가 에세이 수업에서 나온 증언들이다.
사실 방송작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TBS가 지난 2020년 10월 21일 개최한 ‘2020 상암 미디어 여성 페어’에서 패션 스타일리스트 Y 씨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첫 월급으로 40만 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프리랜서 조연출 K 씨는 한 달 넘게 촬영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50만 원을 지급받았다. 2~30년 전 일 아니냐고? 지금, 여기의 이야기들이다. 오늘 당신이 본 바로 그 프로그램도, 이런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은혜
방송작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TV 뉴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일했다. 방송하며 자라난 질문들을 품고 살다가 2021년 7월에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라는 책을 냈다. 세상에 라디오와 밤이 존재하는 한 낭만은 영원하다고 믿는다. https://brunch.co.kr/@graceful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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