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소셜 플랫폼 블라인드서 모금까지 단 3시간
노조 없이 발족부터 해산까지 독자 진행, 민주노총 도움도 거절
전문가들 “직장인 집단 학습 결과, 비정규직 발언격차 좁혀”
지난주 과도한 행사 자제와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트럭 시위를 진행한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이 10일 오후 자발적 해산 소식을 전했다. 스타벅스코리아 측은 임직원들의 요구에 따라 예정했던 가을 프로모션 일정을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무노조’ ‘무기명’ … 실익 좇는 직장인
노조가 없는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번 시위는 그간 우리에게 익숙했던 노조 중심의 시위와 진행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최초 문제 제기글이 올라온지 불과 4시간만에 트럭 시위 진행이 확정 됐고, 모금을 시작한지 3시간만에 목표 금액이 모였다. 발족부터 해산까지의 모든 과정은 직장인 소셜 플랫폼 블라인드를 통해 투표로 의결해 결정했으며, 결과는 실시간으로 다시 공유됐다.
이들은 정치 세력화 되는 것도 철저히 경계했다. 10일 민주노총이 사내 노조를 결성하고 노총의 지원을 받을 것을 권유했지만 시위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 거절했다. 주최측은 시위 진행이 가시화된 시점부터 ‘(우리는) 10일 최종 보고를 마치면 즉시 해산될 일회성 총대’라며, 자신들이 대표성을 가지지 않음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은 오늘 오후 2시 자금 사용 내역을 포함한 ‘최종 보고’라는 게시물을 블라인드에 올리며 해산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이번 온라인 무노조 시위를 집단 학습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올해 초 하이닉스가 임직원들의 블라인드 내 이의 제기로 성과급 기준을 조정하는 등 최근 온라인 채널을 통해 사내 문제가 공론화 되고 직원들의 요구가 관철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기성 조직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내는 직장인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노성철 사이타마 대학교 교수는 “대한항공부터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블라인드는 이미 조직-산업-제도적 수준에서 노사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론장으로 기능하고 있다”라며 “실제로 회사가 바뀌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요구를 투명하게 담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점점 더 모여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3시간만에 모금 완료, 배경엔 블라인드가
이번 단체행동은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한 1999년 이래 22년 만에 처음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 29일 새벽 한 스타벅스 직원이 직장인 소셜 플랫폼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었다.
자신이 한 스타벅스 매장 점장이라 밝힌 글쓴이는 “한국 현실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회사는 대대적인 수퍼바이저 감축을 시행했고, 진급 전형은 주기적으로 열었지만 티오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매번 뽑지 않았다”라며 “1인 3역 하던 기존 매니저들은 몸과 마음의 병을 얻어 회사를 떠났다. 모순적으로 신규 매장은 무섭도록 늘렸다”라고 업무 과중을 호소했다.
해당 글이 올라온지 4시간만에 트럭 시위를 진행하자는 발의 글이 올라왔다. 시위에 참여한 직원들은 주최측의 신상 공개 여부, 시위 장소 및 기간, 시위 문구, 모금액 등의 주요 의제를 잇따라 블라인드 앱 투표로 정했다.
주최측은 투표 결과에 따라 블라인드 1:1 메시지인 DM을 통해 스타벅스 재직자임을 확인하고 비밀유지각서를 썼으며, 외부에는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1,000만원 이상을 불특정 다수에게 기부 받을 경우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해야 한다는 기부금품법에 의거, 모금 목표액을 330만원으로 확정했다.
문구 후보를 선정하는 글에서는 ‘회사를 무작정 비난하는 게 아니라 스타벅스코리아가 스타벅스의 이념과 가치에 맞는 회사로 돌아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는 등 내부 기준을 당부했고, 그 결과 트럭에 내걸 12개의 문구를 최종 선정했다.
노조 없이 가능하겠냐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10월 4일 오전 블라인드에 모금을 시작한다는 글이 올라온지 3시간 만에 모금액이 모였다. 주최측은 임직원 180명이 개별적으로 모금에 참가했다고 전했다.
대표 이사 사과에도 … 본질적 구조 개선 요구
불과 일주일 사이 시위가 가시화되자 5일 송호섭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직원들에 공식 사과 메일을 보내 사태 진화에 나섰다.
송 대표는 “예상하지 못한 준비 과정의 소홀함으로 업무에 과중함과 큰 부담을 드렸다”라며 “정형화된 프로모션 개선, 채용의 탄력성 확보, 조직 개편을 통한 소통 채널 강화를 병행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직자들의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대규모 마케팅 행사 ‘프리퀀시 이벤트’를 진행하겠다고 공지한 것. 스타벅스의 한 직원은 “사원들이 아무리 항의해도 근무 환경이 바뀌지 않고 있어 단체행동에 나섰다”라며, 고질적 사내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번 시위를 진행할 것이라 전했다.
고용 형태에 따른 발언 격차 좁혀
이번 스타벅스의 시위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식음료 매장 직원들이 시위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또다른 시사점을 낳았다.
고용노동부의 2018년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1.8%로, 갓 두자리수를 넘는 수준이다. 노동조합의 모태가 최초로 등장한 영국의 노조 조직률(23.4%)의 절반 정도다. 가까운 대만(32.9%)이나 일본(17.0%)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같은 공식 발표는 모두 정규직과 일부 비정규직을 합산한 수치다. 정규직에 비해 근로환경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경우 노조 가입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노조법은 시위에 참여시의 면책 특권을 노조 조합원에 한해 부여하고 있어, 이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식품업체의 한 재직자는 “우리 업계는 매장이 전국에 퍼져있는데다 비정규직 직원도 많아 노조가 생기기 어려웠다”라며 “그간 단체 행동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많았는데 스타벅스 사례가 업계의 좋은 효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정희 노동연구원 박사는 “온라인 발언 채널의 활성화가 노동자들의 고용형태, 기업 규모, 임금수준 등의 차이에 따른 ‘발언 격차’를 좁히는 데 기여하는지 여부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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