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행복도는 직장인 개인의 삶의 질뿐 아니라 조직의 성과와 직결된다. 이 사실을 일찍이 확인한 경영학자들은 구성원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불만족시 구성원 행동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오늘은 그 중에서 허쉬먼의 ‘이탈-발언-충성’ 모델을 통해 조직 구성원과의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왜 조직의 성과와 구성원의 만족도 향상에 필수적인지 조명해보고자 한다.
당신은 어떤 유형? 불만족을 경험한 직장인의 네가지 반응
모든 회사에는 문제가 있고, 직장인은 이로 인한 불만족을 경험한다.
회사를 다닐지 말지를 정하는 것이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 같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불만족을 경험한 경우 주저없이 떠나면 된다. 하지만 회사와 직장인 사이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직장은 내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고, 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불만족을 경험할 때 직장인들이 보이는 반응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분석틀은 1970년에 허쉬먼이 제안한 ‘이탈-발언-충성 모델’이다.
허쉬먼은 불만족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반응의 능동성과 결과의 파괴성에 따라 이탈(Exit), 발언(Voice), 충성(Loyalty), 태만(Neglect)로 분류했다. 유형별 앞글자를 따 ‘EVLN 모형’이라고 불리는 이 모델은 현재까지도 인적자원관리 및 노사관계 연구자들이 조직과 그 구성원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분석하는데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네가지 유형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
불만족 경험에 대한 첫번째 반응인 이탈(Exit)은 말 그대로 미련없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물론 이탈의 대상이 회사가 아닌 팀이나 사회적 관계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떠나고 나서도 조직에는 불만의 원인이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구성원들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구자들은 특히 기업간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Krug 외, 2014).
두번째로 발언(Voice)은 불만족에 능동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이탈과 유사하지만 조직에 갖는 영향력은 정반대다. 발언 유형은 다른 조직 구성원들과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한편 문제의 원인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경영진이 알아차리기 힘들었던 조직의 문제가 드러나고, 공론화를 통해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최근 모 대기업 4년차 사원이 CEO를 포함한 전 직원에게 성과급 지급방식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그 결과 성과급 지급방식이 수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태만(Neglect)은 조직 문제를 경험한 후 이른바 ‘월급루팡’ 모드로 진입하는 행동 유형을 가리킨다. 업무에 기울이는 노력을 최소화함으로써 조직이 준 실망이나 배신감을 되갚는 것이다. 이 ‘태만’ 유형은 조직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에게 업무 태도를 전염시켜 궁극적으로는 조직 전체의 성과저하를 낳는다.
끝으로 충성(Loyalty)은 언젠가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의지해 버티는 유형을 의미한다. 조직에 불만은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업무에 매진한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잠복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위험이 존재한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이를 인내(patience)로 칭하기도 한다(Hagedoorn 외. 1999).
회사의 선택에 따라 구성원 반응도 바뀐다
허쉬먼의 ‘이탈-발언-충성’ 모델이 갖는 가장 큰 함의는 네가지 유형이 결코 독립적이지 않으며,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 조직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조직은 제도 운영을 통해 구성원들의 행동 유형을 생산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인재들의 자발적 이탈(Exit)이 잦을 경우 회사는 발언(Voice) 유형으로 전환하는 직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등이 그 예다. 동료들의 발언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험한 구성원들의 조직 충성은 높아지고, 그 결과 이탈(Exit)보다는 발언(Voice)을 선택하는 이들이 증가한다. 즉 조직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구성원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조직의 제도 운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인 제도적 통로는 노동조합이다. 1980년대 이후 산업의 구조적 변화 등으로 인해 주요 국가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하락 혹은 정체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1990년대에는 노동조합을 대신할 수 있는 발언 기제들을 적극 도입하는 양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고충처리위원회, 노사협의회, 참여적 작업시스템(high-involvement work system), 타운홀 미팅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들은 두가지 한계점이 있다. 먼저 회사에 의해 운영되고 관리된다는 점에서 재직자들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또한 구성원간 원활한 소통과 협업을 위한 친사회적 목적으로만 활용된다는 점이다. 구성원이 조직내 문제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혹은 개선을 목적으로 한 공론장을 제공하는 데는 인색한 경향이 있다.
단소리는 조직 내부로 소화하고 쓴소리는 사절하는 발언기제는 결국 값비싼 비용을 치른다. 최근 미국의 대형 테크기업에서 직장 내 다양성, 성추행 문제, 기술의 올바른 사용 등을 둘러싸고 나타난 구성원 행동주의(employee activism) 역시 그러한 경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1].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안적 발언기제들의 특징과 역할을 살펴본다.
참고문헌 Hagedoorn, M., Van Yperen, N. W., De Vliert, E. V., & Buunk, B. P. (1999). Employees’ Reactions to Problematic Events: A Circumflex Structure of Five Categories of Responses, and the Role of Job Satisfaction.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20(3): 309-321. Hirschman, A. O. (1970). Exit, Voice, and Loyalty: Responses to Decline in Firms, Organization, and State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Krug, J. A., Wright, P., & Kroll, M. J. (2014). Top management turnover following mergers and acquisitions: Solid research to date but still much to be learned. Academy of Management Perspectives, 28(2), 147-163.Naus, F., van Iterson, A., & Roe, R. (2007). Organizational Cynicism: Extending the Exit, Voice, Loyalty, and Neglect Model of Employees’ Responses to Adverse Conditions in the Workplace. Human Relations, 60(5): 683-718. Rusbult, C. E., Zembrodt, I. M., & Gunn, L. K. (1982). Exit, Voice, Loyalty and Neglect: Response to Dissatisfaction in Romantic Involvem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3(6): 1230-1242. Rusbult, C. E., Farrell, D., Rogers, G., & Manious, A. G. Ⅲ. (1988). Impact of Exchange Variables on Exit, Voice, Loyalty, and Neglect: An Integrative Model of Responses to Declining Job Satisfaction.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31(3): 599-627. [1] 조선비즈. “실리콘밸리의 노동 운동··· 혁신과 권익의 충돌 해법 찾을까?”. 2018.10.4.
노성철
일본 사이타마 대학교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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