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유튜브에서 스타트업 CMO로 이직했다. 팀원은 고작 3명. 3년 만에 50명이던 직원이 150명 규모로 성장한 스타트업에서 그녀는 COO 자리에 올랐다. 대중에게 ‘번개장터’와 ‘브그즈트랩’을 각인시킨 최재화 부대표는 지금 스스로 커리어의 정점에 있다고, 이 자리에 와보니 경험보다 감각, 원석과도 같은 패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최재화 번개장터 COO


Q. 더현대 서울에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은 매장 중 하나가 이곳 브그즈트랩(BGZT Lab)이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어떻게 오프라인 스니커즈 리셀 매장을 만들 생각을 했나?
중고 거래 앱이 다양화되면서 앱 서비스만으로는 특별함을 전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번개장터는 중고 거래 앱 중에서도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온라인 플랫폼처럼 모든 카테고리를 망라하는 중고 전문 커머스다. 카테고리마다 고유의 커뮤니티와 문화가 형성돼 있는데, 그 커뮤니티를 한데 모으는 공간이 생긴다면 시너지가 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리셀 규모가 가장 큰 ‘스니커즈’를 주제로 잡고, 실물로 보기 어려운 한정판 스니커즈를 누구나 만져보고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Q.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중고나라’, 지역 서비스를 표방하는 ‘당근마켓’과 구별되는 번개장터만의 특색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게 있다면 꼭 그걸 동네에서만 찾을까?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이 데뷔 초 ‘나만 아는 아이돌’이었을 때, 우리 동네에서 방탄소년단 팬을 찾아 포토 카드를 교환하는 건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소수 문화, 컬트 문화를 향유하는 이용자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으니까 말이다. 그걸 모아주는 게 번개장터다. 지역이 너무 멀거나 해서 대면 거래가 힘든 이용자들을 위해 안전한 비대면 거래를 돕는 번개페이를 도입하기도 했다.
Q. 글로벌 공룡 기업인 유튜브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다 스타트업 번개장터로 이직한 이력이 눈에 띈다.
원래 중고 거래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나름대로 LP 디깅하는 걸 좋아하는 정도였다. 번개장터에서 이직 제의를 받고 처음 번개장터 앱을 깔았는데, 제가 애타게 찾던 아도이나 누자베스의 한정판 LP가 있는 거다. ‘이게 유튜브의 두더지 영상 같은 거구나’ 싶었다. 지상파 방송사밖에 없던 시절에는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는 콘텐츠만 살아남지만, 유튜브가 생기면서 100만 뷰가 나오는〈워크맨〉과 마니아층만 즐기는 두더지 영상이 공존하게 됐지 않나. 유튜브 콘텐츠를 x축, 소비자 수를 y축으로 그래프를 그리면 뷰 수가 적은 콘텐츠들이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그 부분을 ‘롱테일’이라 부른다. 이제는 롱테일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브랜드들이 요즘 시즌과 시즌 사이에 캡슐 컬렉션이나 컬래버 라인을 계속해서 내놓는 것도 ‘롱테일’ 의 일부라고 본다. 그러한 관점에서 번개장터도 다품종 소량 생산의 극단에 있는 거다. 내가 원하는 건 땅끝까지 뒤져서라도 사는 덕후들이 리셀 문화를 활성화하고 있고 말이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고 ‘가심비’를 중시하는 넥스트 세대의 특성을 고려하면 중고 거래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장에서 내 역량을 펼쳐 번개장터를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입사한 뒤 대대적으로 브랜딩 작업에 돌입했는데.
번개장터라는 이름은 예스럽지만 사람들이 ‘화개장터’에서 만나 물건을 거래했던 옛 문화를 온라인에서 ‘번개’로 이어간다는 연결성이 좋다고 생각했다. 대신 로고와 슬로건 리프레시 작업을 했다. 원래 번개장터의 ‘장터’에 알파벳 ‘J’를 썼는데 ‘Z’로 바꿨다. 더 힘 있어 보이고 번개 모양이랑도 비슷해서다. 위쪽이 평평해서 충전기 모양 같았던 로고는 삼각형을 2개 이은 번개 모양으로 바꿨다. ‘사람 인(人)’ 자 둘이 만나 ‘취향을 잇는 거래를 한다’는 의미이다. ‘중고 거래의 성지’라는 슬로건도 만들었다. 사람들이 모여야 앱이 활성화되고, 그러려면 매물이 많아야 하기 때문에 ‘지름신’의 반대인 ‘파름신’을 키워드로 이정재 배우와 광고 캠페인도 전개했다.


Q. 스타트업의 브랜딩을 성공적으로 이끈 마케터로서 경험과 감각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지?
‘감각’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이해, 시대감각과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물론 경험이란 게 좋은 아이디어가 촘촘히 실행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패기만으로 잘 되는 브랜드도 있는 법이다. 소셜 플랫폼의 등장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경로가 확보되었지 않나. 백화점에 입점하지 못하면 온라인으로 팔면 되고, 국장님이 내 콘티를 결재해 주지 않으면 유튜브에 올리면 되는 시대다.
유튜브에 다니던 시절 유튜브 뮤직 프리미엄을 론칭하면서 이벤트로 선보였던 방탄소년단의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 마케팅을 맡은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팬들을 놀래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강남역의 빌딩 전광판 하나를 사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을 표현한 동물 이모지 7개에 당시 ‘유튜브 레드’ 로고와 해시태그 하나를 띄웠다. 그런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태국인 아미 관광객이 그걸 촬영해 트위터에 올렸고, 서너 시간 만에 글로벌 키워드 1위가 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무모한 용기가 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강남역 빌딩 숲을 지나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그 전광판을 볼 확률, 그 사람이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일 확률, 그리고 외국인이며 트위터를 활발히 하는 사람일 확률을 모두 따지면 그 프로젝트가 성공할 확률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Q. 글로벌 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달라지는 처우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스타트업에 가고 싶어 하는 젊은 구직자들에게 전해줄 만한 연봉 협상의 기술이 있다면?
먼저 나의 시장 가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최소 3군데 지원해 보고 비교하는 게 좋다. 어느 한 곳의 연봉이 눈에 띄게 높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일이 정말 힘들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또 연봉을 구성하는 함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연봉 자체는 낮더라도 스톡옵션이나 자사 제품의 직원 할인을 제공받을 수도 있고 말이다. 내가 성장 가능성 있는 회사에 투자해 보고 싶은지도 관건이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에 처우가 한참 못 미친다고 쳤을 때, 그건 회사 상황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아서일 수 있다. 그럴 경우 이직을 추천하지 않는다. 타이밍이 안 맞는 거라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하다.
Q. 객관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여성은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매우 동의한다. 여성들은 결과에 대해 높은 평가와 보상을 받는 데 욕심을 내기보다, 과정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보면 겸손한 거지만 나는 미련하다 생각한다. 내가 왜 먼저 나를 포기하나? 우는 사람 떡 하나 더 준다고,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최근에 〈싱어게인2〉 여성 참가자가 “우승하고 싶어요. 톱 10에 꼭 들고 싶어요.”라고 얘기하니까 시청자들이 “센 언니다”, “멋있다”라고 하더라. 원하는 걸 당당히 요구하는 게 당연한 거지, 왜 그게 멋있는 세상이 된 걸까 생각했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돈 얘기하는 걸 불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가치를 주장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예린
패션 매거진 COSMOPOLITAN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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