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 지상파 최초로 여성 메인 앵커가 등장했고, 2019년부터 신설된 팩트체크팀은 꺼진 팩트도 다시 보며 뉴스에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KBS 뉴스는 올드하고 고루하다는 편견을 타파해 줄 KBS의 여성 기자들.
이소정 <KBS 뉴스 9> 메인 앵커
‘KBS 최초의 기자 출신 여성 메인 앵커’로서 화제를 모았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여성 앞에 ‘최초’를 붙이거나 여성 앵커 등장에 새로워하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 아닌지 고민했고, ‘새로우면서도 깊이 있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Q. 29년차 기자로서, 예전에는 여성 기자가 일하기에 더 녹록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 같다. 일하면서 차별이나 부당함을 당한 적은 없나.
신입 기자 시절만 해도 군대식, 도제식 문화가 당연시됐다. 일부 고참은 특종을 물어 왔을 때 “역시 그 인간(취재원)은 여자를 좋아해”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선배들의 가르침에는 남녀 구분이 없는 편이었는데, 오히려 출입처나 취재원의 태도가 더 녹록지 않았다. 지금은 예전과 보도국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저녁 9시 뉴스의 톱 리포트를 여기자가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고, 데스크가 여성인 것도 자연스럽지 않나.
Q. 전통적인 언론 매체, 레거시 미디어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KBS 뉴스의 역할은 뭘까.
과거의 뉴스가 ‘시청자들을 가르치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같이 손잡고 가는’ KBS 뉴스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시청자들과 눈 맞추고, 같이 팩트를 쌓아가면서 어젠다를 만들고,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뉴스를 지향하고 있다.
Q. 뉴스의 색깔을 만드는 것과 현장에서 발로 뛰는 기자들의 결과물을 전달하며 중심을 잡는 것. 앵커의 2가지 역할 사이에서 딜레마는 없나.
‘중립적 태도=고루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앵커 개인보다는 기자들의 취재와 기사가 뉴스의 색깔을 만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다. 시청자들이 이소정 개인에게 시선을 빼앗기기보다 뉴스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으며 멘트를 쓰고, 진행하고 있다.
Q. ‘여성’, ‘기자 출신’, ‘40대’ 앵커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3가지 키워드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본의 아니게 ‘여성’, ‘기자’의 대표성을 갖게 돼 엄청나게 어깨가 무겁다. 엄마로서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뉴스를 만들고 싶다. ‘40대’ 앵커로서는 기존 지상파 앵커들보다 경험과 연륜이 부족한 게 사실인지라 두 배, 세 배로 채찍질하며 공부하고 있다. ‘방송 기자’로서 저의 쓸모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는데, 〈KBS 뉴스 9〉앵커를 천년만년 할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좀 더 현장에서 ‘구르면서’ 배우고 싶다. 그 경험을 살려 시사 다큐멘터리도 더 만들어보고 싶다.
신선민 팩트체크팀 기자
이른바 ‘가짜 뉴스’를 검증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유튜브나 SNS 등 플랫폼의 증가와 함께 허위 조작 정보가 늘어나는 환경에서, 거짓 정보로 인해 여론이 호도되지 않게 방지한다.


Q. 기자에게 ‘팩트 체크’는 당연한 임무임에도 별도의 부서가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것 같다.
KBS를 포함한 다수 언론이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 오보를 냈다. 국가기관이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기하다가 벌어진 일이다. 이를 계기로 모든 것을 의심하고 다시 한번 검증하는 일이 더 필요해졌다. 2019년 3월에 신설된 KBS 팩트체크팀은 기자들이 팩트 체크해서 쓴 기사를 ‘한 번 더 의심하는’ 일을 한다. 입법·행정·사법 등 국가기관에서 나오는 정보, 정치인 등 유력자의 발언, 주요 언론 기사 등 공론장에서 누구나 합의 가능한 ‘정확한 사실’을 검증한다.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채널,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살펴 ‘가짜 뉴스’를 찾는 것도 내 일이다. 숫자 등 기본 팩트가 틀린 정보, 맞는 팩트라도 이걸 교묘히 활용해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 등을 위주로 찾아보고 있다.
Q. 팩트 체크를 하는 기자도 사실 ‘사람’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을 때도 있겠다.
기자도 ‘사람’이란 걸 겸허히 인정해야 더 객관적인 기사를 생산할 수 있다. 개인이 팩트 체크 대상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 발화자나 기관은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검증해 보면 틀린 말을 한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팀원들끼리 최대한 상호 체크를 하고, 끊임없이 반박하며 검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간 기자들은 대개 개인플레이로 일했었는데 이제는 동료 기자, 작가들의 집단 지성으로 더 정교한 뉴스를 만든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팩트체크팀은 자체적인 운영 원칙을 지키면서, 뉴스 수용자의 지적이 합당하다면 기사를 수정하거나 보완하기도 한다. ‘다 같이 만드는 진실’을 향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시대 같다.
Q. 기자로서 자신의 관점이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한지 아닌지도 성찰해야 할 것 같은데.
공영방송 기자에게 PC는 더욱 중요한 원칙이다.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다문화 가정 등 소수자 권리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더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은 누구나 들어와서 서로 논박할 수 있는 ‘와글와글한’ 공론장이어야 한다. 거대 권력, 다수가 주도하는 우리 사회 트렌드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현시대 기자들에게는 누구도 캐치하지 못한 걸 짚어내는 ‘섬세한 시선’이 필요하다. PC에 대한 피로감을 보이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이른 반응 같다.
Q. 10년 차 기자인데, 신입 기자 시절에 비해 여성 기자를 대하는 주위 분위기가 많이 변화했다고 느끼는지.
수년 전에는 무언가 취재를 해서 내부 보고를 하면, 사안을 공부하고 자료를 찾고 취재원과 신뢰를 쌓는 모든 노력은 다 무시되고 ‘여자’인 신선민만 남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은 과도기지만, #미투 국면을 계기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여기자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한 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훨씬 더 ‘조심’하거든요. 말조심, 눈빛 조심, 행동 조심하는 게 너무 느껴져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다. 펜스 룰을 실천하는 분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이것 또한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예진
패션 매거진 COSMOPOLITAN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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